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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인원 : 5,932 명
시작일 : 2015년 0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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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삼자 이계석선생님의 칼럼입니다.

이제라도 배달민족 답게, 즉시 내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라.
예수교는 우리 배달민족의 생리에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잔인과 독선과 배타만을 양산해내는 무서운 독(毒)이다.


   
#3[<코로나19>와 예수교의 교묘한 심술(心述)]
글쓴이 : 제삼자 날짜 : 2020-07-20 (월) 09:14 조회 : 888
#3[<코로나19>와 예수교의 교묘한 심술(心술)]


**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3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1)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일 (2) 배우자를 만나는 일 그리고 (3) 죽는 일이라고 하던가? (줏어들은 풍월이다. 필자가 뭘 알겠는가?)
그러면, 예수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3가지는 무엇일까? (1) 천지 창조(天地創造) (2) 예수가 태어나던 날(Christmas) 그리고 (3) 예수의 재림과 동시에 천당에 가는 날(말세), 이렇게 말해질 줄 알았지?

그러나, 제삼자(필자)가 계산하는 예수교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3대 사건은 (1)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 (2) 14세기 유럽에 청궐했던 흑사병의 대유행 그리고, (3) 2019년에 시작된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전세계적인 대유행병)에서 예수쟁이들의 교묘한 심술(心術), 이렇게 3가지 사건이 예수교의 3대 사건이 아닐까 싶다.


제삼자(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전세계의 인구는 35억 명이라고 배웠었다. 그런데, 불과 수 십년 만에 세계의 인구가 자그마치 77억 명이라고 한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인구의 과잉 상태는 각종 공해 문제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구의 인구가 35억 명이던 시절에도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가구 수가 겨우 10호 내외 쯤 되는 조그만 시골의 하수구들까지도 썩어 문드러져서 시궁창화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더럽기 짝이 없었다.
하물며, 77억 명이나 되는 인구를 가지게 된 지구의 육해공(陸海空) 구석구석에는 극심한 각종 공해로 지구의 멸망을 점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제삼자(필자)는 공상(空想=막연하게 마음 속으로 그리어 봄)을 몇 번이고 거듭해 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세계의 인구를 알맞게 조절하여 자연 환경을 건강하게 회복시킬 수가 있을까?"하고.

그러나, 아무리 거듭거듭 공상(또는 생각)을 하여도 태어난 사람(인간)의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태어난 사람 중에서 어떤 종류의 사람을 어떻게 조절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범죄의 크기에 따라 인구의 조절 대상으로 삼을까? 인종에 따라 인구 조절 대상으로 정할까? 연령대 별로 조절 대상으로 할까? 인구가 너무 많은 나라에서부터 솎아내는 방법으로 인구를 조절할까?
유전 인자가 나쁜 종류의 사람을 조절 대상으로 하면 어떨까? 어떤 종류의 사람을 인구 조절의 대상으로 삼아서 인구를 적정 수준까지 줄일 수가 있을까?
결국, 제삼자(필자)는 인구 조절 권한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단 1명의 어떤 사람도 인구 조절의 대상으로 삼을 종류의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전지전능한 재주와 능력을 가졌다는, 거기에다 무진장의 사랑까지도 가졌다는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또는 예수)는 무차별 대량으로 사람 죽이기를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하는 잔인성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도 거론했지만, (1) 전인류를 싹 쓸어 죽여버린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을 필두로 하여 (2) 2,500만 명이라는 사람을 죽인 유럽 대륙의 흑사병의 대유행, 그리고 작금(2019년) 유행하고 있는 (3)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전세계적인 유행병의 창궐)이야 말로 예수교가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야기시키는 3대 사건이 아닐까?

사람을 갖은 방법으로 들볶다가 수시로 무참하게 죽여버리는 짓이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주특기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역학(疫學) 조사와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은 <코로나19>를 예방하고 퇴치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예수(교)쟁이들은 <코로나19>의 역학 조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방해하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술(心術=짓궂게 남을 괴롭히거나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는 못된 마음)을 부리기도 한다.
역시, 사람 죽이는 활동에 적극적이든 또는 소극적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가담하기를 즐기는 여호와(또는 예수)요, 그들의 똘마니(앞잡이)가 바로 예수쟁이들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교리)에 의하면, 이 세상의 각종 역병(전염병) 자체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기분내킬 때 시행하는 작태(作態=하는 짓거리)라고 되어 있다.
이는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에서도 증명이 되고, 실제로 예수교 역사에서도 증명하고 있으며, 작금의 <코로나19>에서도 예수쟁이들의 심보(마음을 쓰는 속 바탕) 짝이 여실히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 안 그래?

(각설하고)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예수교의 3대 사건 중 하나인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을 한 번 따져 보기로 하자.


(1) 노아 때의 대홍수는 주야 40일 동안 쏟아진 강우량에 의하여 빚어진 사건이라고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1시간에 30mm 또는 하루에 80mm 이상의 비가 내릴 경우를 <집중 호우>라고 한다. 요즈음, 기후 변화 때문에 발생하는 <집중 호우>로해서 물난리를 자주 겪게도 되었다.
그런데, 노아 때의 대홍수는 40일(960시간) 동안에 거의 10,000m(10,000,000mm)의 폭우가 쏟아져서 발생한 홍수라고 되어 있다. (홍수 수위가 가장 높은 산 8,848m의 에베레스트를 넘쳤다고 한다.)
그러니까, 하루 동안(24시간)에 80mm가 아니라 자그마치 250,000mm 씩의 폭우가 40일 동안 쏟아졌다는 계산이다.

하루(24시간)에 80mm의 비가 내리면 그것을 가리켜 <집중 호우>라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 즉시 물난리가 난다.
그렇다면, 40일 동안에 10,000,000mm(즉, 하루에 250,000mm 씩)의 비가 쏟아지면, 그것은 어떤 종류의 <폭우>라고 해야 될까?
또, 40일 동안에 10,000m 높이(또는 깊이)의 강우량을 만들려면, 빗방울의 크기가 얼마만 한 것이어야 될까? 
지름이 약 24cm 쯤되는 농구공 크기의 빗방울이 40일 동안 쏟아지면, 지구에서 10,000m 높이(또는 깊이)의 홍수를 만들 수가 있을까?

1시간에 30mm짜리 <집중 호우>만 쏟아져도 금세 세상은 아수라장이 된다. 그렇다면, 농구공 크기의 빗방울이 1시간 동안 쏟아지면 어떤 현상이 빚어질까?
대홍수 때, 노아가 만든 나무 방주(배)에는 노아의 가족 8명과 모든 정한 동물 7쌍 씩과 모든 부정한 동물 2쌍 씩이 실려 있었다. 축구장 만한 크기의 배로는 어림도 없는 엄청나게 커다란 방주였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어째? 농구공 크기의 빗방울을 40일 간 얻어 맞고도 그 커다란 나무 배가 박살이 나지 않고 멀쩡했다고라?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경전)은 신(神)의 가르침이 아니라, 고대 중동 지방의 두뇌가 엉성했던 종교 사기꾼이 꾸며 낸 허구(虛構=거짓,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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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에서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이 허구(虛構=거짓, 가찌)라는 사실을 밝혀 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바이블의 실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이블 속의 어느 누구도(여호와, 예수, 노아, 바이블 기자, 예수쟁이 등등) 식물(植物)이 <호흡>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천지를 창조하고 이것을 임의로 다스린다는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도 그것을 모르고 있다.

대홍수 때, 여호와(예수교의 신)는 말하고 있다. "모든 기식(氣息=숨을 쉬는 기운)이 있는 동물들을 방주(배)에 넣어 생명을 유전(보존)케 하라."고. "식물까지도 방주 안으로 끌어들이라."는 말이 없다.
예수교의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을 비롯해서 바이블 기자(종교사기꾼)는 "동물 만이 아니라, 식물(植物)도 호흡을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이블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노아의 대홍수 때에 방주(배)에 들어가지 못한 모든 식물(植物=생물 중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일군)들은 전멸됐을 것이며, 동시에 유기물을 합성할 수 없어서 먹이사슬의 단절로 마침내 지구 위의 모든 생명체는 멸절됐어야 말이 된다.
바이블 기자(여호와=예수=종교 사기꾼)가 식물도 호흡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이 허구(虛構=거짓, 가짜)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증명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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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노아 때의 대홍수 수위는 가장 높은 산을 덥고도 15규빗(어른의 팔꿈치에서 장지 손가락까지의 길이)이 더 높았다고 한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이 8,848m 이므로, 그 때의 수위는 거의 9,000m 즉,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대류권 높이(약 10,000m)와 대충 같다는 말이다.
 
대기권은 산소가 포함된 부분을 고려하면 지상 약 1,000km 쯤 된다. 그러나,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대류권은 약 10km(10,000m) 밖에 되지 않는다. 
바이블의 기록대로라면, 노아 때의 대홍수 수위는 대류권 높이와 같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지구 위의 공기가 아무리 포화 상태로 수분을 포함하고 있더라도 노아의 대홍수를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바이블 기자(여호와=예수=종교 사기꾼)는 역시 대기권과 대류권은 물론 대기(大氣) 중의 수분의 포화 상태 따위의 지구 과학을 몰랐던 것이다.
대기(大氣) 중에 수분(水分=물의 축축한 기운)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만큼 가득 채워진 상태를 <포화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면, 노아 때의 대홍수 수위는 대류권 전체가 수분으로 채워진 <포화 상태>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말이다.

대류권 전체가 이미 수분이 아닌 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40일 동안 무슨 비가 오느니 마느니가 무엇에 필요한 넋두리(길게 늘어 놓는 말)일까?
역시,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경전)은 신(神)의 가르침이 아니라, 고대 중동 지방의 종교 사기꾼이 꾸며 놓은 허구(虛構=거짓, 가짜)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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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지상 10,000m 쯤 상공은 섭씨 영하 60~70도 쯤 된다.

노아 때의 대홍수는 지구 모양이 약간 변형된 상태이므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방주(배)가 홍수 기간(375일) 동안 10,000m 상공에 떠 있었다면, 모든 생명체는 얼어 죽어 동태 같이 되었을 것이다. 노아가 만든 커다란 방주(배)에 난방 장치는 없었을 테니까.
바이블 기자(여호와=예수=종교 사기꾼)는 10,000m 상공의 기온도 몰랐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수위(水位)가 10,000m 상승하면 공기도 그만큼 상승하겠지만, 10,000m 상공은 아무래도 공기가 희박하여 방주(배) 안의 동물들은 모두 질식사(窒息死)를 하게 될 것이다.
바이블 기자(여호와=예수=종교 사기꾼)는 역시 고공(高空)의 온도와 밀도(또는 기압)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 노아의 방주(배)가 대홍수 기간 동안 물 위에 떠 있던 기간은 1년보다도 훨씬 더 길다. (375일)
그런데, 배 안에 실려 있는 동물에는 고양이과의 대형 맹수(사자, 호랑이 등)도 있었을 테고, 코끼리는 물론 얼룩말과 소와 양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각종 곤충과 벌레들도 실려 있었겠지?
그렇다면, 서로 먹이사슬 관계로 얽혀서 먹느냐 먹히느냐로 꽤나 복잡했을 텐데, 이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또, 그 많은 동물들의 먹이와 배설물들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었을까?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경전)은 신(神)의 가르침이 아니라, 미개 시대의 종교 사기꾼이 꾸며낸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래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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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에는 <열과 그 전달 방법>,<기압과 대류 현상>,<물과 그 존재 형태>,<적도와 양 극지방>,<천체와 그 운행>,<기후 변화의 원인>,<생물 군집 내의 먹이사슬>. 
그리고 <세균과 바이러스>, <원자와 분자>, <화학 변화와 물리 변화> 등등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이 기록될 당시의 인지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세계이며, 따라서 바이블은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 담긴 가르침이 아니라, 미개인(종교 사기꾼)의 어리석은 신관(神觀)이 고스란히 담긴 글임을 알 수 있다.
 
노아 때의 대홍수가 허구(虛構=거짓, 가짜)이면 이것을 기록했다는 모세가 허구이고, 모세가 허구이면 모세가 처음으로 발견했다는(알게 됐다는) 여호와도 허구이며, 여호와가 허구이면 여호와의 아들을 자처하는 예수도 허구요, 예수를 모시고 있다는 예수교도 통째로 혹세무민 집단이요 복마전(伏魔殿=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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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이 너무 길어져서 지루하게 됐지만, 
여호와의 그 변덕스럽고 포악한 성품을 한 가지만 살펴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 같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여호와(예수교의 神)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貫盈=죄악 따위가 가득참)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6;5~7)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제 손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을 금방 후회하면서 "부서뜨리겠다."고 악을 쓰는 장면이다. 
있어서는 안될 신의 경거망동(輕擧妄動=경솔하고 조심성 없이 행동함)이 아닐 수 없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歆饗=신령이 제물을 받아 먹음)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20~22)


노아가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더니, 그 뇌물을 받아 먹은 값으로 여호와가 침을 질질 흘리며 헬렐레하고 아부를 떠는 모습이다.
"내(여호와)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라."라고.

조금 전에 사람을 비롯해서 모든 생명체를 모조리 죽여 놓고서 금방 "다시는 죽이지 않겠다."고 또 후회하는 예수교의 신 여호와의 변덕!

그런데, 말이다. 
여호와가 떠들어대고 있는 말,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이게 무슨 말일까?
   
"사람의 성품이 어려서부터 악(惡)하다."는 말은 그 책임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창조자인 여호와에게 있다는 말일까?
그러니까 노아의 대홍수 때, 떼죽음을 당한 모든 생명체들은 자기 잘못은 없고, 오로지 여호와의 창조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창조의 실수?) 때문에 빚어진 처참한 비극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 노아 때의 대홍수는 천지를 창조했다는 여호와가 책임을 지고 익사(溺死=물에 빠져 죽음)했어야 정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노아 때의 대홍수 사건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 녀석의 오판(誤判=잘못 보거나 잘못 판단함)이 빚어 낸 지구 역사상 최고 최대의 비극적 사건이었다고나 할 수 있을까! 할렐루야 아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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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 녀석에게는 최고급의 명예로운 직함(職銜=맡아보는 벼슬의 이름)이 많다.

1.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분이시다.
2. <완전(完全)>한 분이시다.
3. <절대자(絶對者)>이시다.
4.<사랑(agape)>이 무궁무진하신 분이시다.
5.<용서(容恕)>의 화신이시다.
6.<은혜(恩惠)>로운 분이시다.
7.<구원자(救援者)>이시다.
8. <공의(公義)>로운 분이시다.
9. <불변(不變)>하는 분이시다.
10. <대속자(代贖者)>이시다.
11.<무오(無誤)>한 분이시다.
12. <천당(天堂)>의 주인이시다. 등등, 세상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명칭이란 명칭은 모조리 끌어다 안고 있는 녀석이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타이틀(title=명칭)이다. 대박!

그런데, 이런 타이틀을 가졌다는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성품은 변덕(變德=이랬다저랬다 변하기 잘하는 성질이나 태도)과 포악(暴惡=사납고 악독함)으로 가득하다. 그래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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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다음은 노아 때의 대홍수에 관한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 내용의 골짜이다.
   시간이 없는 독자들은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1)[여호와(예수교의 神)께서 사람의 죄악이 관영(貫盈=죄악 따위가 가득참)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인명)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신(神)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하>과 <야벳>이라.

(창세기 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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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을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을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晝夜)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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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600) 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배)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이 신(神=여호와)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 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더니.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면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곧, 그 날에 노아와 그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처와 세 자부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홍수가 땅에 사십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 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漲溢=물이 불어나 넘침)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氣息=숨을 쉬는 기운)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물이 일백 오십일을 땅에 창일(漲溢=물이 불어나 넘침)하였더라.

(창세기 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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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神=여호와)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신(神)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신(神=여호와)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창세기 8; 1~22)






["아버지여, 저희를 사(赦)하여 주옵소서." 예수]-헐!


사람이 사리(事理=사물의 이치나 일의 도리)를 분간하지 못하고서 행하는 언행(言行)에는 무슨 의미(가치)가 있을까? 
특히, 인간이 신(神)을 감지할 수 없는 무능한 현상에 대하여 정죄할 수가 있는 죄목(罪目=범죄의 명목)에 해당할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예수교의 신 여호와)여, 저희를 사(赦)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누가 23;3)

위의 말은 예수(여호와의 아들)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기 직전에 한 말이라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자기 아버지 여호와에게 그들의 죄를 용서하라고 빌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세상 돌아가는 일을 훤히 알고 있을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 쪽에서도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무슨 자격으로 그들을 사(赦)하라 말라 하고 있을까? 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무슨 죄목이 성립되기에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일까?


옳든 그르든 간에,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예 조상) 사람들은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자기네 종교가 가르쳐 놓은 전통에 따라 이단(異端=정통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교의나 교파를 적대하여 이르는 말)을 처단해 왔다.
이에 준하여, 히브리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당시의 기준으로 <예수>와 <히브리 사람들> 중 어느 쪽이 정당한 쪽일까?

다시 말해서, 예수는 여호와의 이름을 참칭(僭稱=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神의 아들이라고 일컬음))한 죄인이며, 예수를 처단하고 있는 히브리 사람들은 여호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럴 경우, "누가 누구의 죄를 사(赦)하여 달라."고 신(神=여호와)에게 탄원을 해야 되는 것일까?


"여호와시여, 젊은 혈기에 예수 저 놈이 지금까지 크게 죄를 지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값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용해 주옵소서."
예수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야 제대로 된 상황이 아닐까?

그런데, 무엇이라고?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십시오. 저들은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적반하장(賊反荷杖)에 해당하는 난센스(nonsense=터무니없는 짓)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기에서 잠시 예수의 부활 장면을 먼저 보아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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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안식일 첫날이 되려는 미명(未明)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主=여호와)의 천사가.....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마태 28;1~6)

예수의 무덤 주변 상황은 미명(未明=날이 샐 무렵), 두 명의 마리리아(여자 이름)가 있고, 큰 지진이 발생하고, 옆에 천사가 있으며, 수직하던 사람들은 무서워 떨고 있었다.
큰 지진 속에서도 두 명의 마리아는 아무 감각(반응)이 없다.
무덤을 막은 돌은 천사가 굴려 내고, 예수의 시체는 이미 없었다. 물론 예수의 부활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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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리)을 더 보자.

2)[.....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해가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눈을 들어 본즉, 돌이 벌써 굴려졌으니.....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마가 16;1~6)

여기서는 미명(未明)이 아닌 해 돋을 때이며, 여자는 두 명이 아닌 3명이며, 천사가 아닌 청년이며, 돌문도 천사가 열지 않고 이미 열려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큰 지진 이야기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없으며, 무서워서 떨고 있는 사람도 없다. 바로 위의 마태(바이블)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물론, 여기에도 예수의 부활 장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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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또 보자.

3)[.....여자들이.....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누가 24;1~5)

마태(바이블)와 마가(바이블)의 이야기와도 상황이 다르고, 여기(누가=바이블))에서는 천사라는 표현 없이 2사람이 등장한다.
물론, 큰 지진 이야기도 없다. 여기에서도 예수의 부활 장면이나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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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자..

4)[.....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나이다."하니,]

(요한 20;1~2)

여기(요한=바이블)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여자) 뿐이며, 천사 비슷한 것도 없다. 
마리아는 무덤 근처까지만 왔다가 돌아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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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교의 경전 바이블은 신(神)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라서 일점일획(一點一劃)도 하자가 없는 신(神)의 말씀이 담겼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위에서 본바와 같이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등, 4가지 책의 내용이 모두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2. <큰 지진>이 발생했다면 기록에서 누락될 사건이 아니다. 무덤을 경비하던 사람들은 물론, 원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었어야 됐던 사건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서운 사건이 <마태>에만 있고, 다른 곳의 기록에는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3. 천사 또는 사람이 1명이라고도 하고 2명으로도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천사라는 것은 사람이 보고서 알 수 있는 존재인가? 천사라는 것은 사람과 어떻게 구별이 되는가?

4. 예수의 무덤에 찾아간 사람(여자)는 1~3명으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숫자인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5. 예수의 시체와 부활 장면을 본 사람이 없다.
천사 또는 어떤 사람, 그것도 1명인지 2명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을 통하여 듣기도 하고, <요한>에서는 아예 시체가 없어졌다는 사실만 기록되어 있다.

6. 바이블의 모든 기록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또는 예수)의 존재와 그 능력을 인간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기록마다 왜 틀리게 씌어 있으며, 결정적 장면은 어찌하여 오리무중(五里霧中=일의 갈피를 잡을 수 없거나 사람의 행적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인가?

7.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3번 씩이나 말해 주었었다.
이보다 중대한 사건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가 죽은(대단히 중대한 사건) 후, 제자들은 집에 돌아가서 머물고 있다. 겨우, 막다라 마리아(비천한 여자?)의 연락을 받고 무덤에 나타난다. 될 법한 상황인가?


예수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 가리켜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는 사람들이다."라며, 자기 아비 여호와에게 사(赦)해 주라고 탄원을 했다.
그런데, 예수의 부활 장면도 명확하지 않고 흐리멍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뭐가 뭔지 모르게 하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예수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현상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찌하여 사(赦=용서)의 대상이 되지 못되고 지옥으로 가야 되는 걸까?
인간이 여호와 (또는 예수)를 믿지도 못하고 따르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여호와(또는 예수)란 녀석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예수의 말을 빌면, 모르고서 하는 일(예수를 믿지 않는 일)은 사(赦=용서)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여호와(또는 예수)에 대해서 모르고서도 아는 체(또는 믿은 체)하는 짓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예수쟁이들 중에 정말로 신(神)을 아는 자가 있을까?
그 모르는 자들이 "밑져야 본전 식`으로 믿는 짓"  "혹시나 해서 믿는 짓"  "바이블 내용은 알지도 못하면서 적당히 믿는 짓(척)"  "역사적 신앙 즉, 환경에 의하여 믿는 짓(척)" 등등.....
사실상, 여호와(또는 예수)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으면서 믿는 척하는 짓은 무슨 처벌을 받아야 되는 걸까?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모르는 사실을 자신의 의지와 양심에 의지하여 내린 결정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믿는 사람은 신(神)에 대하여 아는 체를 하며 자신의 책임을 적당히 전가(轉嫁=잘못이나 책임 등을 남에게 떠넘겨 덮어씌움)시키려는 심보를 숨기고 있다.
예수에 의하면, 전자는 사(赦=용서)의 대상이다. 그러면, 후자는 무엇의 대상인가? 예수의 말을 직접 듣고 싶다.

결국, 예수쟁이들은 신(神)을 속이고, 사람(이웃)을 속이고, 자신도 속인 죄값으로 무엇을 받게 될까?
사람이란 속이는 짓과 책임을 전가(轉嫁)하려는 짓이 없다면, 신(神)을 믿는 짓(척)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옳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속이는 짓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예수쟁이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 마음의 평정을 얻은 자는 어떤 위치에서도 성공자이다. ]


제삼자 2020-08-02 (일) 23:56
[골짜기에 수북하게 쌓인 많은 마른 뼈다귀들]


전쟁에서 전사를 했던 어떤 사람(군인)이 50년이 지난 어느 날 부활을 하여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다. 물론, 부활한 사람(군인)은 50년 전의 청년 모습으로 재생되어 있었다.
고향에 살고 있던 아내는 70~80살 먹은 다 늙은 노파(老婆=늙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럴 경우, 재회를 하게된 부부에게는 행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수 많은 사람(군인)들이 죽은 지 수십 년이 되어 마른 뼈다귀들만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부활(復活=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시켜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현상이 빚어질까?
물론, 예수교의 전지전능하신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베푸는 멋진(?) 기적질이었다고 한다. 한번 볼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선지자 에스겔)게 임하시고, 그 신(神)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여호와)가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뼈에게 대언(代言=남을 대신하여 말함)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여호와)가 생기(生氣)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하셨다 하라.]

(에스겔 37;1~6)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족속의 (1) 군인들이 수북하게 쌓여서 싸우는 전법으로 싸우다가 죽은 것인지(?) 아니면, (2) 여러 곳의 전투에서 싸우다가 죽은 시체를 옮겨다가 수북하게 쌓아 놓았는데, 이것들이 오랜 세월에 바짝 말라 붙은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사람 죽은 시체의 마른 뼈다귀들이 골짜기에 가득하더란다. 이것들을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 <에스겔>을 시켜 여호와가 살려내는 기적질을 연출(演出=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만들어 냄)하겠다는 게 바이블 기록이다.


전지전능한 신(神) 여호와는 거대한 천지를 창조할 때에는 어느 누구와도 상의함 없이 홀로 그 작업을 했다면서, 왜 하찮은(?)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어느 선지자(앞잡이)를 앞세워가면서 하고 있을까?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이것 때문인가? 사람이 신(神=여호와)을 알게 할 방법이 앞잡이를 앞세우고서 하는 그런 짓 밖에는 없는가? 오히려, 너무도 속 보이는 허구(虛構=거짓, 가짜)가 아닐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기로 하자.


**2) [이에 내(에스겔)가 명을 좇아 대언(代言)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결(連結)하더라.
내(에스겔)가 또 보니, 그 뼈들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生氣)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에스겔)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極)히 큰 군대(軍隊)더라.]

(에스겔 37;7~10)


여호와가 시키는 대로 <에스겔>이 대언(代言=남을 대신하여 말함)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골짜기에 가득한 뼈다귀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더니, 원래의 뼈들끼리 연결되고 그 위에 살가죽이 입혀졌더란다. 그러나, 아직은 생기(生氣)는 없더란다.
그래서, 다시 여호와의 명대로 하여 거기에다 생기를 넣었더니, 살아난 사람들이 극(極)히 큰 군대(軍隊)가 되었더란다.

"극(極)히 큰 군대(軍隊)"라면, 얼마나 많은 수의 군대를 나타내는 말일까?
요즈음 말로 사단(師團=약 20,000명) 병력의 크기일까? 아니면 군단(軍團=2개 사단 및 여단으로 편성된 전술 부내) 병력의 크기였을까?
여호와의 아들 예수의 실력(기적질)은 겨우 시체 하나 둘을 살려 낸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러고 보면 <에스겔>은 대단한 인물이요 여호와의 커다란 앞잡이였던 것 같다. 헐!

오래 전에 죽었다가 새롭게 살아난 극히 큰 군대(수만 또는 수십만)의 대원들이 나누는 인사 말, 죽었다가 살아나게 된 경이로움, 갖가지 사건 등등으로 떠들썩했을 소리들은 천지가 떠나갈듯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그런 현상에 대한 일언 반구의 말도 없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을 내고 있다. 되는 현상일까?

"극(極)히 큰 군대(軍隊)"란 100 명 또는 1,000 명의 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군대는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의 청년들의 집단이다. 살아남과 동시에 서로 안면이 있는 전우들이다.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보다 더 흥미(기적) 있는 일이 있을까? 그런데, 바이블에 이런 복잡한 상황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까지 제삼자(필자)가 여기에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더 보자.


**3) [또, (여호와) 가라사대, "인자(에스겔)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뼈)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滅絶)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에스겔)는 대언(代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神)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故土)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에스겔 37;11~14)


지루하게 긴 바이블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는 일은 생략하자. 다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극(極)히 큰 군대의 장병"들이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그것도 30년이나 50년이 지난 후에, 죽은 줄 알았던 아들과 남편들이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6.25 사변(한국 전쟁) 때, 전사했던 어느 가정의 남편(또는 아들)이 50년이 지난 뒤에 부활을 하여 살아서 돌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은 죽을 당시의 젊은 나이로 소생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향에 돌아간 이들은 이미 많이 늙어져 있을 가족들과의 만남은 어떠했을까?
특히, 살아서 돌아온 남편보다 수십 년이나 늙어져 있을 아내가 젊은 모습으로 나타난 남편을 만나는 순간, 그 상황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행복일까? 불행일까? 헐!

또, 죽어서 없어졌던 "극(極)히 큰 군대(軍隊=수만 명?)가 어느날 갑자기 히브리 족속 사회에 나타났다고 하자. 
그 큰 사건이 히브리 및 중동 지방의 역사에 기록되고도 남을 사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사건은 가장 먼저 바이블에 씌어졌어야 말이 된다. 그 위대한 여호와의 기적질을 빠뜨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의 마른 뼈다귀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질은 모세의 출애굽 사건을 훨씬 능가하는 대사건(기적질)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위대한 앞잡이였던 <에스겔>은 환상도 많이 보았다니까, 위의 내용도 환상이라고 변명할 예수쟁이들도 있겠지만, 환상을 신(神)의 가르침으로 여기는 자들이야 말로 사기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황당한 말들이 담겨 있는 바이블을 옆구리에 끼고서 대로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재미있기도 하다. 
예수쟁이들이여!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대들도 사람일 텐데 말이다. 어디에다 정신을 빼앗기면 그렇게 되는 걸까? 대박!


** 여담;
50살 먹은 어떤 예수쟁이가 제법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아내도 50살 동갑이었다. 이를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여호와의 눈에도 좋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여호와는 지상으로 내려와 그 예수쟁이 부부를 만나보게 되었다.

"내가 하늘에서 너의 살아가는 모습을 다 보았다. 제법이더구나.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래서, 무엇이든지 네가 소원하는 것을 한 가지 쯤은 들어주고 싶구나. 말해 보거라."
그러자, 그 예수쟁이가 자기의 소원을 말했다. "좋습니다. 저에게 저보다 30살 어린 여자를 하나 점지해 주십시오."
여호와가 대답했다. "그래? 30살 어린 여자라? 그거 별로 어려운 소원이 아니구나. 그래. 그렇게 해 주마."

잠시 후에, 50살이었던 그 예수쟁이는 80살 먹은 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늙은 예수쟁이 아내의 모습은 여전히 50살 먹은 중 늙은이(?)이 그대로였고.







[험한 세상에 알몸으로 내동댕이쳐진 인간]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아들 예수는 누군가에게 해코지(또는 죽임)를 당할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숨어다녔다고 한다. 헐!
마침내, 지금은 그 해코지가 무서워서 그런가 아예 그림자도 없이 숨어 있어서 어느 누구도 찾아 볼 수(낼 수)없이 꼭꼭 숨어버렸다.
예수의 아비 여호와는 아예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공기나 바람보다도 더 묽은 상태로, 아니지, 진공 상태보다도 더욱 묽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해코지를 받을 염려 없이 존재할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다. 
"신은 없다." 
"신은 죽었다." 또는 
"신을 믿을 수가 없다." 등등으로 예수교의 신에 대해서 그 <썰>이 분분하다.
숨으시더라도 적당히 숨으셔야지, 이렇게 아예 찾을 수 없이 꼭꼭 숨어 버리시면,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쩌라는 것인지? 나 참!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 1)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예수)가 아직 50(살)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예수쟁이들의 옛 조상)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저희(사람들=유대인들)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聖殿)에서 나가시니라.]

(요한 8;57~59)


성전(聖殿=여호와께서 머물던 집?)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예수가 일장 설교를 했던 모양이다. 
"자기(예수)는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이에, 사람들이 예수에게 시비를 걸면서 물었던 모양이다. 
"아직, 50살도 안 되는 네가 정말로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냐?" 라고. 예수가 대답했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느니라."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들어 예수를 쳐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예수 당시의 사람들로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예수는 감히 스스로 자신이 신(神)이라고 참칭(僭稱=분수에 맞지 않게 스스로 황제나 왕이라고 일컬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돌을 들어 쳐 죽이려 하자, 예수는 "숨어서 성전에서 빠져 나갔다."고 한다. 신이란 녀석이 사람들의 해코지가 무서워서 숨어버렸다는 말이다. 헐!.



** 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예수)를 믿지 아니하니....] 

(요한 12;36후반~37)


여호와의 아들 예수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갖가지 기절질들을 곁들여 보여주면서 설교를 하고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랬건만, 사람들은 예수의 썰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예수의 썰에 넘어가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여러가지 표적(기적질)까지 보여주면서 설교를 해도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믿지 않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은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까지 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예수는 사람들 곁을 떠나 숨어버렸다."고 되어 있다.



** 3) [회당(교회)에 있는 자들이 이것(예수의 설교)을 듣고, 다 분(憤=억울하고 화가 나 원통한 마음)이 가득하여 일어나, 
(예수를) 동리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리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예수께서 저희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누가 4;28~30)


예수가 자기 고향의 회당(지금의 교회)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일장 명설교(?)를 하게 됐던 모양이다.
그런데, 예수의 설교를 들은 고향 사람들 모두는 분(憤=억울하고 화가 나 원통한 마음)이 나서 예수를 마을 근처에 있는 낭떠러지까지 끌고가서 밀쳐 떨어뜨려 죽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왜,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돌로 쳐 죽이고 싶을 정도로 예수의 설교에 분(憤)하여 했을까?

이 때의 예수의 설교 내용을 알 수가 없어서 무엇이라 평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예수의 설교는 그의 주특기인 악담과 저주를 범벅으로 섞어 놓은 험악스런 내용의 말로 설교랍시고 떠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하여간, 낭떠러지에서 밀쳐 내려뜨려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니까, 예수란 녀석이 어떤 놈일까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도, 신(神)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놈이 "사람들 가운데로 지나서 어디론가 숨어버렸다."는 것이다. 신의 재주(능력)가 있어서 그런가, 숨는 방법이 아주 쉽고 간단하다. 헐!.



** 4) ["....나(예수)와 아버지(여호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善)한 일로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僭濫=분수에 맞지 않게 너무 지나침)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신(神=여호와)이라 함이로라."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요한 10;30~39)


"나(예수)와 아버지(여호와)는 하나이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 예수가 선포하는 장면이다.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자기(예수)와 한 몸이요, 동급이다."라고 떠들고 있는 말이다.
이만하면, 당시의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 조상) 사회에서는 예수를 죽여야 될 마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바이블에도 있는 표현처럼, 예수의 참람(僭濫=분수에 맞지 않게 지나침)함이 너무도 지나쳐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날도 예수교 속의 여러 종파 중에서는 자기 자신이 "나는 신이다." 또는 "내가 예수다."하며 종교 사기꾼들 중에서도 한 층 위에서 펄펄 나는 사기꾼들이 있다.
마찬 가지로, 예수도 이미 2,000여 년 전에 대단히 뛰어난 사기꾼 노릇을 훌륭하게 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아맹!

그런데, 말이다. 사기꾼은 자기 이외의 또 다른 사기꾼을 견딜 수 없는 법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도 예수의 참람(僭濫=신 노릇)함은 죽여 없애야 되는 존재(=마귀)였던 것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종교 사기꾼들 중에는 스스로 신(神)을 참칭(僭稱)하는 뛰어난(?) 사기꾼이 섞여 있다.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여기서도 사람들은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고 했단다. 그러나, 신출귀몰할 정도로 재주가 뛰어난 예수는 유유히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 숨어버렸다."고 한다.
결국, 신이란 작자가 사람들의 해코지가 두려워서 숨어버렸다는 말이다. 헐!


예수가 자기 몸뚱이를 가지고 숨어다니든 아예 숨어서 없어지든 그것은 내 알바 아니다. 그런데, 말이다. 

전지전능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신(神)이란 녀석 자신은 사람들의 해코지가 무서워서 숨어 다니면서, 자기를 믿고 받드는 새끼(예수쟁이)들은 알몸으로 지옥 같은 세상에다 그냥 내동댕이쳐 놓은 이유가 뭘까?
한 술 더 떠서, 
"핍박을 받아라." 
"순교도 당하라."라고 윽박지르는 작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것일까?


예수의 아비 여호와! 이 녀석은 아예 애당초부터 인간의 감각으로는 전혀 찾을 수 없게 숨어 있어서, 어떤 해코지도 당할 염려가 전혀 없어서 좋겠다.
반면에, 여호와나 예수와는 아주 다르게 너무도 연약하고 무능하게 태어난 인간(예수쟁이)들은 세상에 완전히 노출되어 언제 어떤 불행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세상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져 있다.

자신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능력자(神=여호와, 예수)는 보이지도 않게 숨어 있고, 전혀 아무 힘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존재(인간)들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이렇게 엉터리로 짜여진 세상을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 걸까?


제삼자(필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어이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강자(强者)가 약자(弱子)를 돌보는 세상이 아니라, 강자들이 벌여 놓은 불행들을 수습하는 존재가 약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강자란 사회 질서와 원칙을 파기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마침내 어떤 종류의 기득권을 확보한 자들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예수교란 무엇일까?
전지전능한 신(神)이란 작자가 연약한 인간을 돌보고 도와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신(神)이란 녀석이 벌여 놓은 불행들을 수습하고, 그 불행들을 대신 걸머지고 허덕이는 인간, 이런 관계가 묘하게 얽혀 있는 조직이 바로 예수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세상이란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하게도 되었다.
제삼자 2020-11-29 (일) 01:23
[여호와(예수)는 잘 훈련된 예수쟁이들의 종놈이다]


주인은 노비(奴婢=사내 종과 계집 종을 아울러 이르는 말)를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다.
종놈들 중에는 입 안의 혀처럼 부려 먹기 정말로 편리한 놈도 있기 마련인데, 여호와(또는 예수)야 말로 예수쟁이들에게는 대단히 편리한 종놈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이 휘뚜루마뚜루(무엇에든지 닥치는 대로 쓰일 만하게) 대단히 편리한 종놈이 맞다.

(각설하고)


동양의 역대 왕조에서는 혁명으로 권력이 바뀌면, 승자는 "천명이 나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게 마련이었다.
단순히 권력욕으로 임금을 거역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천명(天命=하늘의 명령)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로 돌려 민심의 화살을 피했던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그것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로 옮겨졌다."로 변명하여 합리화시켰다.

천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신(神=여호와 또는 예수)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승자 쪽에서 선수치며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포해 놓으면, 힘 없고 무지한 일반 백성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게 마련이다.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는 천명을 빙자한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에도 예외 없이 승자(사실은 악마일 껄?)들에 의하여 변명하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예를 들자면, 바이블의 <시편>은 주로 승자(악마)인 다윗(왕)과 솔로몬(왕)의 황당하고도 어처구니없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바이블의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를 보아도 여호와(예수교의 神)는 인간 세상의 승자 즉, 악마들을 변호해주는 종(노예) 노릇을 해 주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과 여호와(또는 예수)가 인류 역사 속에서 해 놓은 일이란 기득권을 잡은 악마들의 언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주구(走狗=사냥개) 노릇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유대교(예수교의 모태)의 지도자들은 포로 생활을 할 때,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신권(神權) 정치를 펴며 군림했던 페르시아 대제국의 황제들에게까지 "여호와의 뜻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아부를 떨면서 여호와를 자기네 종놈 부리듯하며  부려 먹는다. 
종교쟁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라도 여호와(또는 예수)를 자기네 종놈으로 부려 먹는 일에 주저함이 없음을 볼 수 있다. (에스라 1;1~4), (역대하 36;22~23)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페르시아 대제국에 빌붙어야 됐던 매국노들이 었음은 물론이다.


우리 한국의 예수교(여호와 또는 예수)는 어떨까? 
일제 시대는 물론 박정희, 전두환 등,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쟁이들의 기득권을 유지해 주기 위하여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종놈 노릇을 해주느라 정신이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우리 한국에서도 승자(=악마), 기득권자들의 종 노릇 또는 앞잡이 구실을 빠짐 없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은 물론, 유럽의 역대 왕조들도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내세우며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악마 이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일단 승자의 자리를 챙취한 후,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선포하면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나 천명(天命=하늘의 명령)을 아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명품이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과 <천명>이었던 것이다.
이 <명품 물건>을 약자, 실패자 또는 선량한 사람이 멋모르고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잃어야 된다. 이것이 이단이요 패배자이다.
그러나, 승자 또는 악마가 떠들었을 때는 신(神)의 진리가 된다. 여호와(또는 예수)와 <천명>은 악마들의 전용품 노릇을 하는 명품이면서 동시에 입 안의 혀처럼 말 잘 듣는 종놈이 된다.


예수교의 역사와 구미(歐美=유럽과 미국)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여호와(또는 예수)를 종놈으로 잘 부려 먹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승자(사실은 악마)의 기록이다.
대형 교회, 중형 교회 또는 소형 교회란 목사 이하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여호와라는 종놈(또는 상품)을 어떻게 부려 먹었느냐로 판가름을 낸 모습이다.
본인 자신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어떤 예수쟁이일지라도 예수와 여호와를 자신의 종놈(앞잡이)처럼 부려 먹지 않는 예수쟁이는 없다.

"예수와 여호와는 예수쟁이들의 잘 훈련된 종놈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가진 예수쟁이라면, 그 사람은 그 날로 예수쟁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느니, <은혜>를 입었느니, <마음이 편해졌다>느니, 등등의 모든 현상은 여호와(또는 예수)와는 전혀 아무 상관(관련)이 없는 예수쟁이 개개인의 자가당착(自家撞着=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결과(응답)는 신(神)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종놈 여호와(또는 예수)가 주인(예수쟁이)의 심기에 맞도록 충복의 구실을 하게 된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기도란 주인(예수쟁이)이 종놈(여호와 또는 예수))을 불러 불편한 심기를 호소하면, 종놈이 적당히 알아서 기는 모양을 이름이다."
이 때 특이한 점은 주인(상전=예수쟁이)이 종놈에게 하는 억지 말 중에는 억지 투정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종놈 쪽에서 그것을 지적하며 상전(예수쟁이)에게 항의하는 법은 없다. 종놈은 무조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교의 기도 형태는 주인(예수쟁이)의 억지 요구를 종놈(여호와 또는 예수)이 어떤 저항이나 거절 없이 무조건 순종하는 주종(주종=주인과 종놈) 관계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예수쟁이가 주인(상전)이고, 여호와(또는 예수)는 하인이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참으로 길이 잘든 예수쟁이들의 충복이다.
예수쟁이들 요구대로 아무렇게나 부려 먹어도 아무 말 없이 순종만으로 외 길을 걷는 충복이 바로 예수교의 신(신) 여호와(또는 예수)이다.

무지와 어리석음과 악마 같은 성품을 뭉쳐져서 만들어진 여호와(또는 예수). 이에 부화뇌동(附和雷同=아무런 주관 없이 남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아 함께 어울림)되어 정신 못차리는 예수쟁이들! 그 무서운 죄악들을 무엇으로 갚음을 하게 되려나?


신(神)의 두려움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무리들이 예수쟁이들이 아닌가 여겨진다.
예수의 말 마따나,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한 무지막지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신도 속이고 사람(이웃)도 속이고 자신도 속이고, 눈과 귀까지 막고 살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주어진 지능과 이성조차 포기하고,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무책임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 참고; 종을 함부로 부려 먹는 상전(上典=종의 주인) 중에는 너무 지나쳐서 망나니짓으로 종을 고약하게 대하는 아주 못돼 먹은 주인이 없으란 법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여호와(또는 예수)를 자기 종놈 이상으로 마구 부려 먹다 못해서 마침내 거지발싸개 만도 못한 취급을 하는 예수쟁이가 없으란 법도 없다. 사실상 이런 종류의 예수쟁이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예수쟁이에게 여호와(또는 예수)로부터 내려지는 벌도 없고, 천벌(天罰=하늘이 내리는 벌)도 없다. 왜일까?  
"여호와(또는 예수)는 무진장의 사랑을 가진 신이요, 무한대의 용서를 가진 신이기 때문이다." 예수쟁이들의 머리 속을 꽉 채워 놓은 도피처(逃避處=달아나거나 숨어 몸을 피하는 곳)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호와(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종놈 신세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할렐루야 아맹!






[밑도 끝도 없이=예수쟁이들의 언행]


** 밑도 끝도 없이--앞뒤의 연관 관계가 없는 말을 불쑥 꺼내어 갑작스럽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게.
(각설하고)

오늘, 외출했다가 돌아와서(2020년 7월 23일 오전 10시 조금 전), 어느 TV방송을 열었더니, 
천주교 <신부>, <비구니 스님>, 그리고 개신교 <목사>, 이렇게 3사람이 패널(panel)로 출연을 해서 좌담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나보다. 프로가 금방 끝나고 다른 장면으로 옮겨가서 많은 장면을 시청할 수가 없었다.

진행하는 MC(아나운서)가 3사람의 성직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상대 종교인들의 언행들 중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질문이 던져지자, 가장 먼저 <비구니 스님>이 말을 꺼냈다.
"가끔, 기독교인들 중에는 절에 와서 법당 안에다 오물을 투척하기도 하는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신부와 목사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경쟁적으로 답변을 늘어 놓았다. 그 답변들이 조리있게 다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참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등등의 변명이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대충, 이런 식의 답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 다음,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상대를 배려하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평화와 평등의 종교입니다." 등등의 변명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은 예수교가 종교로서 그럴 것이라고 짐작들을 하고 있으며, 그렇게 말들을 할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착한 척>, <너그러운 척>, <통 큰 척>, <인격적인 사람인 척> 하면서 눈웃음을 살살 뿌려대는 사람들이 바로 종교인 특히, 예수쟁이들이 아니던가?


자, 그러면 이제, 바이블을 보면서 정확하게 예수교(쟁이)의 진면목(眞面目=본디 그대로의 참된 모습이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1) [여호와(예수교의 신) 가라사대,
"'네 동포,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너를 꾀어 이르기를.....
네 열조(조상)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다른)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그는.....네 신(神)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신명기 13;6~11)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 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다른 신(神)을 섬기자고 꾀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부모 형제, 처 자식 또는 동포(친구)일지라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덮어 숨기지도 말고,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돌로 쳐 죽이라."는 것이 여호와의 지엄한 명령이다.

따라서, 진짜(진정한) 예수쟁이라면 사찰에 갔을 때, 오물을 투척하는 짓을 자행(恣行=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거나 일을 저지름)하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될 일이다. 
절간을 아예 부숴버리거나 방화를 해서 불을 태워 흔적도 없이 만들어야 그래야 훌륭한 여호와(또는 예수)의 앞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물 투척 정도가 아니라, "불자를 돌로 쳐 죽이고" 와야 그것이 자기네 신의 명을 제대로 준행하는 짓이 아닐까?
일점일획도 하자가 없는 진리의 말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의 가르침(명령)이다. 


아직도 예수교(쟁이)에 대해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면서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다음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도 마저 보기로 하자.
 

**2) [번제(신에게 제사지내던 방식 중 하나) 드리기를 다하매 예후(왕)가 호위병과 장관들에게 이르되, "한 사람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죽이라."하매, 
호위병과 장관들이 칼로 저희를 죽여 밖에 던지고, <바알>의 당(堂)이 있는 성으로 가서, 바알의 당에서 목상(木像)들을 가져다가 불사르고, 바알의 목상을 헐며, 바알의 당을 훼파(毁破=헐어 깨뜨림)하여 변소를 만들었더니,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열왕기하 10;25~27)


<예후>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명에 따라 유혈 혁명을 일으켜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제10대 왕위에 오른 사람이라고 한다.
<예후>가 유혈 혁명을 일으킬 때,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요람왕(아합왕의 아들)과 그 형제들 70명과 이세벨(아합왕후)이, 그리고, 남쪽의 유다 왕국에서는 아하시야왕과 그 형제들 42명이 모조리 도륙을 당했다고 한다. 

<예후>가 예수교의 신(神)이신 여호와의 명에 따라 유혈 혁명을 일으키는 과정과 결과는 너무 복잡하다.
또,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이 서로 얽혀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더 더욱 복잡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그런 모든 것을 생략하기로 하고, 위의 바이블(예수교의 근본 교리) 이야기로 직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알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유혈 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예후왕>은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서 즉시, <바알신>을 받드는 이단들을 모조리 도륙(屠戮=사람이나 짐승을 무참하게 마구 죽임)시킬 속임수를 썼다고 한다.
우선, <예후왕> 자신도 <바알신>을 받들 것처럼 위장을 하고서, 바알 선지자들과 그 신도들을 모두 바알 신당으로 모이게 한다.

그런 다음, 예후왕은 장관들과 호위병들에게 명하여 바알신의 선지자들과 그 신도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모조리 도륙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바알의 목상(木像)을 박살을 내고>, 바알의 신당(神堂)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다 <변소>를 만들었더니, 그 변소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할렐루야! 아맹!

** 참고; <바알의 목상(木像)을 박살을 내고>를--<사찰의 불상(佛像)을 박살을 내고>로 참 예수쟁이들의 머리 속은 채워져 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오늘날 예수쟁이들이 절(사찰)에 구경을 갔다가 오물 정도를 투척하고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찰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다 변소를 짓는 것까지는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적어도 그 절의 각종 기물에다 갖가지 페인트로 낙서라도 해 놓고 물러나야 그래야 진짜 예수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박!
실제로, 절의 기물을 파괴도 하고, 각종 낙서를 남겨 놓는 진짜(독실한) 예수쟁이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 안 그래?
제삼자 2020-11-29 (일) 01:25
[퇴계 이황이 율곡 이이에게 내린 잠언(箴言)]


持心貴在不欺 (지심귀재불기)
入朝當戒喜事 (입조당계희사)

마음 가짐에 있어서는 속이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벼슬자리에 올라서는 함부로 일 만들기를 좋아함을 경계하라


율곡 이이는 23살 때, 계당서당(도산서당, 후에 도산서원)으로 58살의 퇴계 이황을 스승의 예로서 찾아 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며칠 동안 두 사람은 침식을 함께하면서 학문을 담론한다. 율곡은 서울로 떠남에 즈음하여 스승 퇴계에게 간곡히 청했다고 한다.

"한평생의 좌우명(座右銘=늘 자리 옆에 갖추어 두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말이나 문구)으로 삼을 잠언을 한 말씀 들려주시십시오."

위의 잠언은 그리하여 태어난 것이다.
위에서 퇴계가 율곡에게 들려 준 잠언으로 예수교 바이블의 잡다한 횡설수설을 잠시 비교해 봤다.
반기련의 독자들도 위의 잠언을 몇 번이고 되새겨 본 다음 그 마음 자세로 바이블(예수교)을 음미해보기 바란다.




[예수 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을 벌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아닌 사람>을 벌 주려면 어떤 방식이 있을까?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을 보자.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하시더라.] 

(마태 4;17)


2,000년도 훨씬 더 전에 예수(여호와의 아들=구세주)의 입을 통하여 떠들어 놓은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저 것이 100살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떠들어 놓은 말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예수 당시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태어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잘못한 일, 책망 받을 일 그리고 벌 받을 일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칭찬 받을 일도 없기는 마찬 가지이고.

다시 말해서, 2,000년 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오늘의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는 떠들고 있었던 셈이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낼 테다. 그러니, 회개해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향해서 공갈 협박을 쏟아낸 예수였던 것이다. 세상에나!

(각설하고)


(1) 알리바이(alibi=앨러바이)
    범죄가 일어난 때에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범죄 현장 이외의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을 주장함으로써
    무죄를 입증하는 방법, 고급스럽게 말해서 <현장 부재 증명>이라 할 수 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시간 대에 없던 사람이 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2) 2100년에 유럽의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으로 태어날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니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다.
     이 사람이 1950년의 한국 전쟁(6.25사변)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전지전능한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또는 예수)의 능력과 재주를 대입시키면 성립시는 방법이 있을까?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마태 10; 38)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태 27; 50)

위의 2가지 바이블 구절은 1.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예수의 가르침과 
                                   2.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는(죽는) 장면>을 대비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는 가르침은 무슨 뜻일까?
예수쟁이들은 물론, 예수쟁이가 아닌 사람들도 곧 잘 인용하는 말이므로 잘들 알 것 같다.
죄 없는(?)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억울하게 십자가에서 처형된 것처럼, 예수쟁이는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이다.

    
그렇다면, <자기 십자가>라는 말(의미)은 예수가 죽은 뒤에 생겨 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라는 말이 마태 10장(예수가 살아서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서 예수 입을 통하여 직접 떠들어지고 있다. 
그 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되는 장면은 <마태 27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

이 말은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죽은 뒤에, 예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떠들었어야 성립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저 가르침이 예수가 살아서 활동을 하면서 제 입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그렇다면, [2100년에 유럽의 스페인에서 스페인 사람으로 태어날(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1950년의 한국 전쟁(6.25 사변)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면, 성립될 수 있는 말일까?]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처형된 뒤에야 생겨 날 내용과 의미를 가진 말, 이 말을 예수가 직법 자기 입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예수교의 근본 교리)은 두뇌 조직이 엉성한(IQ 45쯤 되는?) 사람이,
그러면서도 속이 대단히 시커멓고, 냉혈 동물적 기질을 가진 종교 사기꾼이 꾸며 낸 허구(虛構=거짓, 가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코가 뚫려 질질 끌려 다니며 노비(奴婢=사내종과 계집종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하의 못나니 짓을 하는 무리들은 뭘꼬? 기가 막힐 일(현상)이다.
 
 
** 필자 주;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기 전의 <십자가>는 흉악범을 처형하는 사형틀일 뿐이다.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예수)를 따르라."는 말을 예수가 살았을 때 직접 떠들었다면, 이는 "예수쟁이들아, 너희가 날강도 살인범이 되지 않고는 나(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느니라." 이런 뜻이 된다. 안다스텡 모른다스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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